선구적인 페미니스트로 꼽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랜도’를 원작으로 한 오페라다.
아시아 첫 개인전 ‘바버라 크루거: 포에버(FOREVER)’ 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에도 오스카 무대에 오를까?
새로 이사한 집 위에는 마포대교가 있고, 아래에는 한강이 있다. 나의 방은 반지하인데, 반지하에서 사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에는 반지하의 창문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자동차의 불빛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지금 지내는 곳은 창문에서 쇠창살과 회색 담장만 보인다.
20대 초반부터 오십을 넘는 나이까지, 그녀들은 모두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엄마로 상징되는 여자의 삶은, 그들의 딸들에게 닮고 싶지 않은 서사이자 다시 쓰고 싶은 역사이기도 했다. 여자는 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를 닮지 않은 여자를 소망하며, 또 다른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딸을 낳는다. 반복되는 고리 앞에 누군가는 눈물을 쏟고 누군가는 분노했다. 나를 비롯한 세상의 많은 여자는, 맞닿아서 애처롭지만 닮고 싶지 않은 어머니와 여성상 속에서 자라났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나 파울로 코엘료처럼 순문학임을 자청하는 저열한 작가들에 비하면 제임스 엘로이나 로렌스 블록이 훨씬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비슷한 위치에 있는 두 개의 산이 같은 땅덩이로 이어져 있다 해도 둘은 결국 다른 산이다. 마찬가지로 추리 소설과 순문학 역시 양쪽 모두에서 정수의 근처에도 못 가본 어설픈 작가들 때문에 경계가 잠시 흐려 보일 수는 있겠으나, 엄연히 다른 산이 아닐까? 게다가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문학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봉우리의 높이가 꽤 차이 나는 것 역시 사실이다.